1). 성전산과 황금사원(바위사원)
통곡의 벽 위쪽으로 이슬람교 대사원인 황금 돔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의 ‘카바’ 사원과 메디나의 마호멧트 무덤이 있는 사원과 함께 이슬람 3대 사원 중 하나이다. 주후 630년대, 이슬람교도들인 아랍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솔로몬 성전(로마군에 의해 무너진 성전)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대사원을 건축하였다. 솔로몬의 성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모리아 산이라고 여겨지는 야산 위에 세워졌다. 그래서 솔로몬의 성전 터 주변을 성전산이라고 부른다. 성전산은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솔로몬 성전은 주전 58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의해 파괴되었고,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과 유대인들에 의하여 주전 515년에 소규모로 재건되었다. 이것을 제2의 성전이라 부른다. 주전 20년 헤롯대왕은 제2의 성전을 원래 크기의 위용대로 건축하였으나,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다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지금은 옛 성전의 모습을 찾아볼 길 없고 폐허가 된 성전 터에 두 개(황금 사원과 엘악사 사원)의 이슬람 사원만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주후 638년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압둘 말리크(주후 685-705)라는 칼리프(Caliph)가 691년 이곳에 황금빛 돔의「바위 사원」을 세웠고 그의 아들인 칼리프 왈리드가 751년에 은빛 돔의「엘 악사 사원」(El Aqsa Mosque)을 세웠다. 아랍측이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고, 아름다운 성전산에 웅장한 이슬람 사원을 건축한 것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억누르고 이슬람교의 본산(本山)으로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당시 이슬람의 성도(聖都)인「메카」는 적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이슬람교의 본산으로 만들고자 7년 동안 애굽에서 나오는 모든 세금을 쏟아부어 만들었다. 그들은 이곳에 모하메드가 승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하였다고 말한다.

솔로몬 성전 터에 세워진 이슬람교의 대사원, 바로 이것이 오늘날 아랍 나라들과 이스라엘 간에 불화가 그치지 않는 원인을 상징적으로 시사해준다. 일부 과격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슬람교의 사원을 폭파시킨 뒤 성전을 다시 재건하자고 한다. 그래서 대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언제나 이스라엘 경찰과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하고, 모든 방문객의 휴대품을 하나하나 검색한다. 입구를 통과하여 성전산에 이르면 넓은 대지 위에 키가 크고 오래된 상록수들이 울창하게 드리워져 있다.
대사원의 지붕은 돔형으로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고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을 황금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금돔은 원래 구리와 알루미늄의 특수 합금으로 만든 둥근 지붕에다 황금색을 칠했는데 나중(1994년)에 약 80 kg의 금을 녹여 도금하였다고 한다. 요르단 후세인 왕이 대략 150만 달러에 해당하는 개축비를 보조했다고 전해진다.
이 바위사원은 아랍사람들의 종교적 관습에 따라 누구든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 사원 내부에는 넓이가 약 13m, 길이가 약 18m, 높이가 1.25-2m인 거대한 바위가 놓여있다. 이 거대한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의 제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큰 바위를 중심으로 하여 사원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에 바위사원(The Dome of the Rock)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멧트가 이 바위 밑에서 기도하면서 수도생활을 했고 알라의 부름을 받아 이 바위를 딛고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믿는다.
한편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돌이라”(이사야 28: 16)는 말씀이 있는데 이 바위가 바로 모리아 산의 제단 돌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 큰 바위의 중심부에 구멍이 뚫려 있고 고랑이 패여 있는데 제물로 바쳐질 짐승을 잡은 곳으로 추측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했고,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산이고 성전산의 중심은 성전이고,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실제로 정통파 유대인들은 성전산에 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성전산에는 성전과 함께 지성소가 있던 곳이며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발을 디딜 수가 없었던 하나님의 지성소의 신성함을 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스라엘 항공기조차 성전산 위는 비행을 하지 않는다.
2). 황금 문(Golden Gate)
성전산(Temple of Mt.) 동쪽 벽 중앙에 있는 동문은 황금 문(Golden Gate)이라 불린다(겔 43, 4). 이 문의 히브리어 이름은 샤아르 하라하밈(Sha'ar HaRahamim)으로 ‘자비의 문’이라는 의미이다. 메시아가 오시면 죽은 자들이 일어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 문을 지나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아랍어로는 밥 엘 라메(Bab el-rahmeh)라 부르는데 이 또한 ‘영생의 문’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황금문을 통해 성역으로 들어가 이스라엘을 구속할 것이라고 믿었다. 에스겔의 환상(계시)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 동문으로 들어오며, 메시아도 이 동문으로 들어오셔서 문을 닫게 된다(겔 44:1-3). 또한 스가랴는 주님의 날에 하느님께서 도래하셔서 동쪽 감람산(올리브산)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슥 14:4).
이슬람교 전승 또한 정복자나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해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오스만 터기 제국의 술레이만은 유대교 스가랴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막고 유대교 메시아가 성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황금 문을 막아버린 후 지금까지 닫혀있다(현재까지도 황금문을 무슬림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문을 닫아두는 것이다).
3). 다메석(다마스쿠스) 문
“다마스쿠스(다메석)의 문”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중앙에 있는 것으로 성문들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지역에 현존하는 오스만 터키제국의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문”은 성문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1938-1939년과 1965-196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작업이 진행되었다. 이곳에 성문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헤롯 아그리파 1세(기원후 41-44년) 때의 일이다. 그 후 기원후 135년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에 의해 다시 세워진 성문은 독립적인 구조를 가진 기념비로서, 당시 예루살렘의 새 이름인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들어가는 출입구로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다마스쿠스의 문” 밑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서쪽으로는 십자군 시대의 성당을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성안으로 통하던 옛 문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마스쿠스의 문”의 명칭은 히브리어로 샤아르 세켐(Sha'ar Shechem), 즉 “세겜의 문”이다. 그 이유는 이 성문이 예루살렘의 북쪽에 위치한 세겜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세겜을 거쳐 다메석(다마스쿠스)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 성문의 이름이 “다마스쿠스의 문”이라 부른다.
그리고 아랍어로 이 성문은 바브 엘-아무드(Bab el-Amoud), 곧 “기둥의 문”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곳에 거리를 측정하는 원주형 기둥(Pillar)을 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인들은 도로를 만들면서 거리를 측정하는 이정표로 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로마 시대에는 이 성문에서 “시온의 문”까지 중심 도로(대로), 즉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가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카르도(대로)를 건설하였다. 성문의 밖으로 돌출된 부분(성곽)을 만들었고, 성문 위에는 공격과 방어용 보루 같은 것을 만들었다. 이 성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세워진 것은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던 1537년이다. 그리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으나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야간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다마스쿠스 성문은 정말 아름답다. 이 성문을 예루살렘 성벽의 정문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아랍사람들이 거주하고 물건(기념품)을 파는 무슬림(아랍인) 구역이 나온다.
4). 사자문(Lion Gate), 스데반 문(Stephens Gate)
사자 문 또는 스데반 문은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가 이 근처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하여 기독교인들은 ‘스데반 문’(행 7:54-60)이라 부르며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성문 양쪽에 사자가 조각되어 있다고 해서 ‘사자 문’ 이라고 부른다. 또 제물로 바쳐질 양들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해서 ‘양 문’(느 3:1, 요 5:1-9)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성문 근처에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집이 있다고 해서 “안나의 문”이라고도 불리고 근처에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마리아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유대인들은 여호사밧(기드론) 계곡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여호사밧의 문”이라고도 부른다.
1967년 6일 전쟁 때의 총탄 흔적이 많으며 이스라엘군이 이 문을 통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고 한다. 이 문을 들어가면 길이 좁은 아랍인(무슬림) 구역으로 지나가면서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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